라파엘천사 이야기

[인터뷰] '아름다움'은 '모르는 것' - 최종태 교수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16-06-19 14:42
조회
4939

최종태(서울대학교 명예교수/김종영미술관 관장)


최종태 교수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인물조각으로 표현하는 조각거장이다. 라파엘센터 5층 김수환 스테파노 기념경당에는 최종태 교수가 조각한 십자고상, 성모상, 김수환 추기경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가 기억하는 김수환 추기경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Q 라파엘센터 경당에는 선생님의 조각 작품이 세 점이나 있습니다. 라파엘에 보내주시는 애정이 매우 특별하다고 여겨지는데요. 라파엘센터는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요?
A 김유영 선생이 서울대학교 가톨릭교수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 내가 서울대병원 내 경당을 만들었었어. 그 때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라파엘센터와의 관계도 그 연장선상에서 얘기가 된 거지. 사실 라파엘을 잘 몰랐어. 국시집을 가다가 이상한 집이 생겼다 그랬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라파엘센터였어.

Q 라파엘의 모태가 되셨던 故 김수환 추기경님과도 인연이 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내가 추기경님을 만나게 된 것은 가톨릭미술협회 일을 하면서 알게 됐어. 우리 모임에 나오시게 하고, 말씀을 부탁드리느라고 자주 만나게 됐지. 근데 만날수록 좋아지는 거여. 그래서 나중에는 일 없이도 만나게 됐어.
김수환 추기경님은 한국 가톨릭 미술 토착화에 많은 도움을 주셨지. 여기서 말하는 토착화란 서양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감성에 맞는 미를 찾는 거야. 한 10년을 김수환 추기경님, 장익 주교님과 함께 셋이 손발이 잘 맞아서 열심히 했어. 그 때는 그게 나한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지.

Q 선생님께서 기억하시는 김수환 추기경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A 선종하시기 열흘 전에 병원으로 찾아갔다니 환자복을 깨끗하게 입고 약속시간에 맞춰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시더라고. 그런데 비서 수녀님이 말하시기를 원래 신부님들이 새벽에 혼자 미사를 드리시는데, 밤새 뒤척이시다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미사를 못 드렸다는 거여. 대한민국 추기경이 자느라 아침 미사를 빠뜨렸다는 건 세계 토픽감이거든. 허허. 근데 추기경님이 그때 말씀도 제대로 못하실 때야. 목으로 이야기를 하셨는데, 웃으시면서 그러시더라고. “밖에서 이야기 하지 마….” 허허. 그래서 내가 그랬지. 말이 아니라 글로 써서 온 세계에 다 알릴 거라고. 허허. 그렇게 한 삼십분을 웃다 나왔어. 그런 분이야…. 힘든 와중에도 함께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러셨던 거지. 사실 육체적으로 참 힘드셨을 텐데, 그 상황에서도 유머라니…. ‘참 저 양반은 성인이다.’ 생각했지.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까 정말 훌륭한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더 들어. 우리나라 천주교 230년 역사의 큰 어른이시지. 지금도 늘 생각이 나.

Q 흉상작업은 처음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작업하시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고되셨을 것 같은데요. 작업 동안 주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A 힘은 들었어. 안 하던 일을 하려니까…. 애초부터 놓으려고 하는 장소가 경당이었으니 추기경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계시면 좋을까를 생각했어. 여러 사진이 있었는데, 기도하시는 모습이 좋겠다 싶었지. 되도록 추기경님의 인격이 드러났으면 했어. 나는 늘 보았으니까…. 그 표정이 나오기를 바랐지.

Q 라파엘센터를 찾는 많은 분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만지는 것만으로 일종의 성스러움, 마음의 정화됨을 느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작품들이 종교와 예술, 이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기 때문일 텐데요. 선생님의 신앙이 실제로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요?
A 예술 활동이라고 하는 것은 목적이 없는 것이야. 근사한 말로 하면 ‘아름다움에의 봉사’이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중에 미술적 유산은 다 종교하고 관련됐어. 둘이 만나면 좋은 거여.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늦게 영세를 받았어. 원래는 불교 공부를 하다가 마땅한 법당을 찾지 못해서 가톨릭에 입문하게 되었지. 그 때부터 종교와 예술이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가 되었어. 처음에는 일부러 합치려고 안 했어. 종교는 종교대로 예술은 예술대로 했지. 그래도 ‘나중에는 하나로 모여지면 좋겠다.’ 그런 희망은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50대에 특별한 경험을 했어. 깜빡 죽었던 것 같아. 우뇌, 그러니까 영성만 살아있고 이성을 지배하는 좌뇌의 죽음을 맞이한 거지. 눈앞에 그동안 살아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보이더라고. 그런데 다 내가 잘못한 것만 보이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다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구하면서 절을 했지. 내 앞에 황금빛이 있었거든. 누군지는 모르겠어. 형상이 아니라 빛으로 있었으니까. 그런데 근엄하거나 무섭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야. 마음대로 놀아도 되는 그런 상대라고 느껴졌어. 한참 있다가 하얀 빛이 위에서부터 쏟아지는 데, 그건 ‘사랑의 빛’이었어. 그 ‘사랑의 빛’이 온 몸을 투과할 정도로 쏟아졌어. 골수를 타고 온 몸으로 퍼졌지. 그래서 한 두 달간을 사랑이라고 하는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살았어.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보이고, 사랑에 흠뻑 취해 살았지. 너무 감격해서 작품 할 정신도 없었어. 그 느낌이 하루에도 생각이 안 나는 일이 없어. 그런데 십 년 넘게 설명할 언어가 없어서 말하지 못했었어. 그건 다른 세계였어. 그 때부터 종교와 예술이 합쳐지기 시작한 것 같아. 요새는 다른 것을 못하겠어. 전부 기도하는 사람이 됐지.

Q 선생님의 조각 작품은 ‘무심한 표정의 아름다운 여인상’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지요?
A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봤어.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갑자기 깨달았지. 예술, 조각이라고 하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모르는 것’이다. 참 어려운 이야기지. 내가 찾아서 답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 가르쳐준 것처럼 알게 되었어.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모르는 거야, 하느님도 모르는 거고, 인생도 모르는 것이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편해. 모르는 거니까 알려고 안 하잖아.
앞으로도 더 구현해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도 아름다운 것일 거야. 그런데 아름다움은 모르는 것이니 어떻게 표현하지? 허허. 그래서 예술은 끝이 없어.

Q 더 기억나시는 추기경님과의 일화가 있으신지요?
A 내게는 좋은 스승이 두 분 있었거든. 김종영 선생과 장욱진 화백. 두 거물을 만난 것이 참 행운이었지. 그런데 두 양반들이 일찍 돌아가셨어. 그래서 하루는 추기경님을 찾아가서 말했지. 놀 사람이 없어서 서운하다고 말이야. 그 때 나는 ‘당신하고 놀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인데, 추기경님이 그러시는 거야. “하느님과 놀면 되지.” 참 진리의 말씀이었어. 그 말씀이 지금도 마음에 박혀있어. 그런데 하느님하고 놀기 어려워. 놀 수 있으면 최고의 행복이야.

Q 마지막으로 라파엘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A 세상은 흥망성쇠가 있잖아. 흥한 것은 반드시 영원할 수 없어. 하지만 사람의 정신은 죽지 않아.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정신은 벗어난다 이거여. 위로 향할수록 꺾이지 않고 더 높아지고 더 좋은 세계로 넓어지지. 쇠퇴하지 않고 더 좋은 쪽으로 발전 할 수 있다는 거여. ‘인간의 내면’에 집중해야 돼. 허허.

최종태 교수는 5월, 대구 예수성심시녀회 남대영기념관 문화관 오픈을 앞두고 초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9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화, 조각의 거장들이 모이는 회고전에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