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천사 이야기

[인터뷰] 몽골 CPD 프로젝트 총괄 - 신좌섭 교수에서 듣는 몽골 CPD 이야기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14-10-29 16:55
조회
3349

신좌섭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 몽골 CPD 프로젝트 총괄 책임)


1. 선생님께서 몽골 CPD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신자는 아닙니다만 라파엘에는 평소 존경하고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러던 중 안규리 교수님, 손정화 국장님으로부터 몽골에서 하고 있는 진료사업과 산발적 특강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침 제가 의학교육을 전공하고 있고 오래 전부터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교육 사업을 해온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야기를 꺼내신 것이지요.
처음 이야기가 나온 것이 2011년 봄이니까 제법 오래 전입니다. 그 후 2-3년에 걸쳐서 틈틈이 몽골사업의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를 해왔습니다. 2013년 봄에는 라파엘의 주선으로 몽골 국립의대를 방문해 강의도 했고요. 사실 강의는 핑계이고 저를 몽골에 ‘엮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몽골을 다녀오니 선한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나지 않아요? 결국 라파엘이 현지에서 쌓은 인맥과 신뢰, 그리고 저의 경험을 엮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라파엘 출신인 윤현배 선생이 저희 교실에 박사과정 대학원생으로 들어와서 믿는 구석도 생겼고요. 실제로 윤 선생이 라파엘 사무국과 더불어 대부분의 실무를 챙기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2013년 가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해외사업에 라파엘 이름으로 지원을 했고 작년 10월부터 1년간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원이 확정되고 곧바로 프로젝트를 위한 심포지엄을 몽골에서 개최하고 몽골 보건부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지요.

2. 몽골 CPD 프로젝트를 설명해주신다면?
CPD는 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의 머리글자로 기성 의료인의 지식, 기술, 태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대학에서의 기본교육, 졸업 후 수련교육과 더불어 의료인 교육의 3대 영역 중 하나이지요.
몽골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보건의료 분야에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소련 체제의 영향으로 의사수는 과도하게 많고 간호사수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의사 1명당 간호사가 1.2명입니다. 의과대학은 우리처럼 6년제입니다만 대학은 교육부, 병원은 보건부에 속해 있어 임상실습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성 의사들도 연수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되어 있으나 대부분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의료인의 역량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몽골 CPD 사업은 기본적으로 구립병원(district hospitals)과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졸업 후 의무근무 기간에 있는 신참 의사들, 준의사(physician assistants: feldsher)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몽골 보건부와 국립의대, 중앙병원 간부들을 모시고 CPD 사업을 위한 전략기획 워크숍을 시행한 결과 교육 훈련만으로는 큰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환자관리 프로세스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고, 커뮤니케이션, 팀워크 등 조직의 효과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몽골 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빠르게 이행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 행동준거에 혼란이 생겨 발생한 일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전략기획 워크숍 이후 CPD 사업의 목표를 ‘의사인력의 역량강화, 병원의 조직개발, 환자관리 프로세스의 개선’ 3가지로 수정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의학교육 외에도 조직개발, 병원 시스템 개선 전문가들이 합류하게 되었지요. 서울의대 의료관리학 교실의 김윤 교수가 병원 시스템 개선을, 오랜 친구인 ORP 연구소의 이영석 대표와 유희재 이사가 조직개발을 기꺼이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3. 이번 교육프로그램은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었나요?
이번이 첫해라서 비교적 접근이 쉬운 울란바토르 지역의 바얀주르흐, 수흐바타르 2개 구립병원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최일선 기관인 보건소, 지방의 아이막-소움은 2차년도부터 고려하기로 한 것입니다. 2개 구립병원을 대상으로 요구조사를 한 결과 소아과, 산부인과, 심장, 내분비, 신경, 응급의학 영역의 몇 개 핵심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전략기획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다수의 몽골인을 대상으로 영어를 사용해서 교육을 진행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응급의료 시스템, 환자교육 등 몽골 사람들에게 생소한 몇 개의 특별 주제를 제외하고는 몽골 의사들이 교육을 담당하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소수의 핵심인력을 선정하여 영어로 ‘교육방법’을 가르치고 이들이 몽골어로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중층적 접근방식을 택했습니다.
의사인력의 역량강화는 소수의 TOT(Train of Trainers) 전문가를 영어로 교육한 후 이들이 각 임상분야 강사진을 몽골어로 교육하고 이 강사들이 의사들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조직개발 역시 소수의 전문가를 영어로 교육하고 이들이 조직구성원을 대상으로 조직변화 워크숍을 진행하도록 했지요. 중층적인 접근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외국어’를 하려면 자연스럽게 러시아어가 튀어 나오는 몽골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오히려 몽골인들의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강사로는 중앙병원의 소아과, 산부인과, 심장, 내분비, 신경, 응급의학 전문가들이 동원되었고 이들이 구립병원 의사들을 교육했습니다. 조직개발 전문가로는 보건부와 중앙병원, 구립병원의 간부들이 동원되었고 이들이 구립병원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몽골어로 했지요.

4. 진행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는 일이 있으셨나요?
지난 2월 3일간에 걸쳐 전략기획 워크숍을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 할 때입니다. 카드로 브레인스토밍을 해서 비전-장애-전략을 도출하는 참여적인 방법인데, 워크숍을 시작하고 10여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별로 집중하지 못하고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태평양 14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스리랑카 등 세계 어디서도 잘 통하는 방법인데 말이지요. 이것이 도대체 몽골사람들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농담을 던져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지요.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던 겁니다.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금년 1-2월 서울의대에서 개최한 6주간의 의학교육 전문가 초청연수에 참가한 연수생 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그 중 가장 성격이 차분한 비얌바(Byambasuren)에게 다가가 사정을 설명하고 한번 해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의학교육 초청연수 프로그램 중에 브레인스토밍 방식에 대한 교육이 있었거든요. 비얌바가 선뜻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3일간 저는 비얌바를 따라다니면서 귀속말로 코치를 하고 비얌바는 몽골어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비얌바가 진행을 맡고부터 워크숍 장소가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지요. 저에게도 아주 좋은 경험이었고 참가자들도 대만족이었습니다. 특히 비얌바에게 소중한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부쩍 자신감이 늘고 성숙해진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몽골 특유의 긴 여름휴가 때문에 무척 당혹했습니다. 이 사람들 틈만 나면 도시를 벗어나 초원으로 가려고 해서 6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여름휴가 중에는 아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삶의 자세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몽골에 가면 몽골 법을 따라야지요. 내년에는 저도 몽골 초원으로 2개월 정도 휴가를 가볼까 고민 중입니다.

5. 이번 교육프로그램이 몽골 의료진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사실 작년 11월 프로젝트를 위한 심포지엄을 할 때까지도 몽골사람들에게는 CPD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누구나 CPD를 이야기하지요. 과거 사회주의 시절과는 달리 개인의 역량향상을 추구하는 사회적 트렌드와 맞물려 CPD 개념이 더 쉽게 전파된 것 같습니다. 조직개발이라는 것도 구소련식의 폐쇄적 위계문화에 젖어있는 몽골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참여적 조직개발(participatory organization development)에 대단한 흥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억제되어 있던 유목민 특유의 수평적, 개방적 열망이 표출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참여적 조직개발을 통해서 급격한 체제이행과 사회변화에 직면한 자신들의 모습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계기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일어난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사업에 대한 주인의식이 강화된 것입니다. 우리 사업팀이 늘 강조하는 바입니다만, 이 사업은 몽골인들에 의한 몽골인들을 위한 몽골인들의 사업입니다. 우리는 그저 돕고 안내하는 사람들일 뿐이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의식이 명확해져가고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몽골인들에게 넘길 계획입니다.

6.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몽골 CPD 프로젝트의 최종목표는 무엇인가요?
CPD 사업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로부터 2015-2017년 3년간 더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몽골 국립의대 역량강화를 위한 프로젝트도 KOICA로부터 2015-2016년 2년간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과대학 역량강화, 국립병원의 역량강화 2가지 사업을 동시에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WHO가 몽골에서 전공의 수련과정 개선 사업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2개 사업과 WHO의 사업을 잘 연결하면 몽골 보건의료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번에 몽골에 들어가면 WHO Country Office를 방문해서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CPD 사업의 목표는 물론 몽골 보건의료 시스템과 의료인력 양성체제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서 몽골 사람들의 건강수준을 높이는 것이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몽골인들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참여, 변화, 자유’와 같은 개념들이 우리 프로젝트의 핵심 키워드이지요. 이 같은 이념들을 잊지 않아야 지속가능성도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7.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저는 라파엘이 지난 수년간 일구어놓은 터전을 활용해서 재미있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라파엘에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라파엘이 이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몽골 외에도 라파엘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습니다. 몽골, 미얀마, 네팔 등 라파엘을 필요로 하는 세계 곳곳에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