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매일경제, 라파엘 인터내셔널 해외진료소장 안규리 교수님

인터네셔널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16-08-14 10:59
조회
2620
몽골에게 한국은`무지개 뜨는 나라`

황우석 사태 딛고 몽골서 의료봉사 안규리 서울대 교수








"정직 2개월 처분을 받고 `아, 여기를 떠나야겠구나. 이민갈까`라고 생각도 했죠. 하지만 그동안 제가 받은 은혜를 더 넓은 세상에 돌려주자고 마음을 먹었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지난 15일 서울대 교수식당(소담마루)에서는 `나눔`을 전하는 한 여성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호기심에 시선을 돌리니 뜻밖에도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신장내과)였다.

서울대 명예교수협의회와 오찬 자리에서 그는 2007년부터 헌신해온 `라파엘 인터내셔널`을 소개하고 있었다. 2005년 황우석 사태로 놀란 국민만큼이나 아픔을 겪어야 했던 안 교수.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4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만난 안 교수는 한결 편안한 모습으로 바람직한 나눔의 길을 얘기하고 있었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안 교수가 주도하는 `라파엘 인터내셔널`은 1997년부터 시작된 `라파엘 클리닉`이 모태다. 외국인, 특히 불법체류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매주 일요일 봉사진료를 하던 프로젝트였다. 시행 초 이미 매달 100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찾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의사들의 참여도 크게 늘어 금세 17개 진료과목을 갖춘 야전병원이 됐다. 안 교수는 이 활동에서 머무르지 않고 2007년부터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해외 이웃들에게 눈을 돌렸다.

"인도 오리사주를 의료 답사한 뒤 열악한 시설에 너무 놀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도울 방도를 찾기 시작했죠."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나라는 바로 몽골.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는 몽골의 의료시설과 수준은 너무나 열악했다. 그는 답사 후 의료캠프를 짓고 1년에 두 번씩 의료봉사단을 꾸려 몽골을 찾았다. 몽골 심장병 어린이 환자를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게 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로 성과가 이어졌다.

서울대와 안 교수는 단순히 `치료해 주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몽골 어린이 구충사업과 충치예방사업을 통해 보건위생의 개선으로 건강을 증진하는 예방사업을 이끌었다. 몽골 울란바토르 항올구 병원과는 의료지원 협약을 체결해 현지 의료인 교육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안 교수가 의료교육과 지원에 주력한 데는 숨은 뜻이 있었다. 바로 몽골 의료의 `자립화`였던 것. "혈압이 높은 분에게는 우리가 3개월치 혈압약을 드리고 오지만 3개월 후엔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 앞섭니다. 몽골 의료 인프라스트럭처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한 이유죠."

안 교수가 추구하는 자립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몽골국립대에 한국의 의료진이 가서 강의와 진료 상담을 하고 젊은 의과 교수들을 한국에서 연수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연수프로그램은 지원 자격을 `연수 후 몽골로 돌아가면 라파엘 인터내셔널의 봉사에 꼭 참여한다`고 정해 현지 의사들의 봉사 참여의식을 높이도록 했다.

이처럼 많은 프로그램이 가동됐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답사-의료캠프-보건위생-의료교육-자립화로 이어지는 의료봉사 과정을 더욱 조직적 효율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단다. "우리나라 해외보건의료 지원 사업에 문제점도 분명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기만 하고 그 뒤 확인을 하지 않거나 단기적인 과시 성과를 추구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가 궁극적으로 만들려는 나눔의 길은 바로 `솔롱고스 병원`. 솔롱고스는 `무지개 뜨는 나라`라는 뜻으로 몽골에서 한국을 지칭하는 단어다. 이 병원은 진료지원실과 교육지원실, 정보진료실을 배치해 의료자립화를 위한 유기적인 인프라를 갖추게 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지식`과 `기술`입니다. 이것을 나눈다고 무엇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밖으로 나누면서도 얻을 수 있는 `아웃사이드 인`의 혜택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속한 서울대와 라파엘 인터내셔널이 추구하는 `해외 나눔경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아픔을 잊고자 이민의 종착지로 생각했던 외국은 안 교수에게 `나누면서 받는` 상생과 나눔의 대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재철 기자 / 김명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