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the Raphael Angel

 

[인터뷰] 좋은 죽음 - 정현채 교수(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15-11-25 16:55
조회
3633


정현채 교수는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라는 주제로 2014년 11월부터 매월 셋째 주 화요일, 총 14강의 ‘죽음학’ 강의를 라파엘센터에서 진행 중이다. ‘죽음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소홀히 하고 다루기 꺼려하는 주제인 ‘죽음’에 대해 말함으로써 삶의 유한성과 예측 불허성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삶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죽음학’이란 무엇인가요?
수년전 어느 일간 신문 기사에 의하면 어느 재벌 그룹의 명예 회장이 고령의 나이에 임종이 임박해 오자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비서들과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후속기사가 없어서 이분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고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나가면서 동시에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 평소 어떻게 노력할 것인가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죽음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파엘에서는 2014년 11월부터 시작했는데, 어느덧 해를 넘기게 돼 장장 3년에 걸쳐 진행하게 됐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보람 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주듯이 값지게 쓰인 인생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준다”라고 했습니다. 환자의 임종을 많이 지켜본 어느 완화의료전문의는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손꼽았습니다. 사랑한다. 고맙다. 용서하고 용서를 받기. 작별인사를 잘 남기기. 이러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게 좋은 죽음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음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음에 관해 갖는 감정은 무관심과 부정(denial), 외면 그리고 혐오입니다. 사실은 건강할 때 유언장을 써 보고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야 하는 데 평소 이런 얘기를 하면 “재수 없는 애기하지 말라”고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다가 암 진단이라도 받게 되면 주위에서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 하게 돼 수십 년간 훌륭한 삶을 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 한 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주위에 비일비재합니다. 마무리를 잘 하고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죽음을 직시하고 자주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나요?
영화 “이키루”에 나오는 위암말기의 주인공이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어렵게 추진해 나가지만 주위의 냉대와 푸대접에 시달리자 밑의 직원이 “사람들이 밉지도 않느냐?”라고 하자 “나는 누구를 미워할 수 가 없다네. 그럴 시간이 없어”라고 대답합니다. 문득 퇴근 길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아름답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없구나”라면서 발길을 재촉합니다.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당장 말기 암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삶의 유한성을 매일같이 깨달으면서 말이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라파엘에서의 14회 강의가 끝나면 한 달 쉬었다가 내년 3월부터 한림대 생사학 대학원 과정을 맡습니다. 앞으로 죽음학 강의 콘텐츠를 보완할 예정으로 “사별과 애도”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죽음학” 이라는 내용의 강의도 추가할 계획입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우리 인간은 모두 태어나 늙고 병들며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늘 상기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제가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 새벽에 수영을 한 지 8년이 돼 가는데 물속에서 제가 누리는 여러 기적을 상기합니다.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두 귀로 들을 수 있는 기적. 두 다리로 걷고 뛰어 다닐 수 있는 기적. 정상적인 항문으로 매일 배변 할 수 있는 기적. 딸꾹질로 고생하지 않는 기적. 그리고 밤사이 돌연사를 하지 않아 오늘 하루를 선물로 받았다는 기쁨을 떠 올립니다. 로마의 철학자인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