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the Raphael Angel

 

[한성구 교수의 제멋대로 여행기] – 토루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19-12-30 10:56
조회
3222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 대 미국 공군은 인공위성으로 전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남부 복건성에 이상한 건축물이 포착되었다. UFO 같이 보이기도 하고 무슨 핵무기 저장소 같이 보이기도 하는 미확인 건축물을 두고 미군은 많이 긴장 했었다고 한다.

복건성 토루. 중원에 있던 한족 일부 중 남쪽으로 밀려온 사람들이 세운 씨족 공동체. 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졌다.)라는 고대 중국의 우주관을 표현한 것이다. 인공위성으로 보면 UFO 또는 미사일 기지로 오해 받은 적도 있다.

저 수수께끼의 구조물은 토루(土樓)이다. 중국 명나라 때부터 생겨난 일종의 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집단 거주민을 위한 방어적인 요새의 역할도 했다. 토루의 규모는 작게는 100-200명에서 큰 것은 천 명까지 같이 살았다. 어떤 사람들이 같이 살았을까?

토루를 만든 사람들은 중원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대부분 하남성의 한족이라고 한다. 이들이 고향을 떠나서 복건성까지 내려왔는데 자기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똘똘 뭉쳐서 낯선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 주거형태를 택한 것이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자신들을 객가인(客家人)이라고 불렀다.

이들 객가인들은 근대 중국에서 아주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다름 아닌 진취성이다. 또 다른 면으로는 자신의 정체성, 객가문화를 유지하고 자기 언어를 유지해왔다. 머리가 좋고 부지런한데다가 경제에 능하니 동남아시아의 경제를 석권하고 나아가서 전 세계의 차이나타운도 다 객가인들이 만든 것이다. 진취성과 전통의 유지는 얼핏 보면 서로 같이 유지하기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참 훌륭하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셈이다. 농경사회에서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지만 한 번 떠나 온 사람은 두번 째, 세번 째 떠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 날의 중국을 만든 등소평도 토루에서 자랐다. 삼민주의를 주창한 현대 중국의 아버지 손문, 싱가포르의 국부 이광유, 태평천국의 창시자인 홍수전, 대만의 총통이었던 이등휘, 필리핀의 대통령이었던 코라손 아키노 등등 근ㆍ현세 중국, 나아가 중국 밖에도 역사상 주요 인물 중에 객가인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승계루(承啓樓). 사람이 사는 가장 바깥 동심원의 3층에서 찍은 것. 가장 가운데에 솟아 오른 지붕이 사당이다.

복건성에는 토루가 곳곳에 있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것이 승계루(承啓樓)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토루의 왕’이다. 승계루는 동심원처럼 만들어져 있다. 가장 밖의 동심원은 4층으로 되어 있는데 사람이 주거하는 곳이다. 모든 창문은 토루의 안을 향한다. 토루는 같은 성(姓)을 쓰는 사람들이니 일종의 씨족사회이다. 수백 명이 같이 사는 곳이라 계단이 중간중간에 있는데, 같은 계단을 쓰는 사람들은 가까운 혈연이다. 대개는 사촌까지는 같은 계단을 쓴단다. 주거구역의 바로 안쪽 동심원은 가축을 두는 곳이고 그 안쪽 동심원은 식량 창고이다. 맨 안쪽에는 학교와 씨족들의 사당이 있다. 사당은 토루의 정신적 구심점이다.

 

승계루의 내부. 왼쪽은 외양간이고 바깥쪽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빨래가 보인다.

토루는 씨족사회의 일종의 아파트이고 또 한편으로는 방어용 요새의 역할도 한다. 따라서 외벽이 아주 두껍고 바깥 쪽에는 큰 창문도 없다. 식량 창고도 있고 가장 중요한 우물은 어느 토루에든 있다. 외적이 공격해왔을 때 전원이 단합하고 농성할 수 있게 되어있다.

토루 속의 우물을 옹기종기 들여다보는 여행자들.

또 다른 토루. 동심원이 없고 공간이 자유롭다. 승계루가 꽉 차서 좀 강박적이라면 이 토루는 좀 널널하다.

하남성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후손이 객가인들인데, 그 때 객가인들을 밀어내고 하남성의 주류로 살았던 현재 하남성에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단연 객가인들이 이룬 업적이 크다. 몇 백 년 전에 밀려났던 사람들의 권토중래, 패자전의 부활이다. 진취성과 단합,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이야말로 객가인들의 큰 장점이다.

토루는 워낙 인상적인 건축이기도 하고 객가인들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다. 덴마크의 어느 대학은 기숙사를 짓는데 이 토루의 모습을 본떴다. 이 대학은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공동사회에서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숙사를 짓는데 바로 토루야말로 아주 훌륭한 교육의 장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덴마크의 티에트겐 대학의 기숙사.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려는 목적으로 토루의 형태를 본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