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천사 이야기

[한성구 교수의 제멋대로 여행기] - 귀 없는 호이치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20-08-02 17:34
조회
3565

    한성구 교수의 제멋대로 여행기 - 귀 없는 호이치


시모노세키에 있는 아카마신궁에는 헤이케 무사들의 무덤 근처에 ‘귀 없는 호이치’라는 상이 있다. 이 사람은 누구길래 아카마신궁에 있을까? 호이치라는 사람은 왜 귀가 없을까? 여행자의 호기심을 풀어보자.

(사진: 아카마신궁의 귀 없는 호이치. 장님이라서 귀가 밝았는지 비파의 명인이었다.)

단노우라 전투에서 헤이케가 멸족을 당하고 백년 이상 지난 뒤 ‘헤이케 모노가토리(平家物語: Tale of Heike)라는 일본 문학의 대단한 작품이 나타난다. 일본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일본의 ‘일리아드’라고 부르는데 얼토당토않은 과장은 아니다. 헤이케가 미천했을 때부터 영화로웠을 시절을 거쳐 겐페이 전쟁으로 멸족이 될 때까지의 헤이케 씨족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학적인 가치도 훌륭해서 그간 영어로는 다섯 번 이상 전역이 되었던 작품이다.

(사진: 눈도 멀고 귀도 없는 호이치의 얼굴이 평화로워 보인다 음악이 위안을 주는 걸까?)

호이치는 눈이 먼 장님이면서 비파의 명인이었다. 특히 ‘헤이케 이야기’를 비파를 뜯으면서 노래하는데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음유시인이었던 것이다. 호이치는 어느 절에 몸을 의탁하고 자신의의 노래를 듣기를 원하는 신도들에게 이를 들려주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안 보이는 호이치에게 아주 무서운 목소리가 들려왔단다.

“호이치! 호이치!”

“네.”

“나는 가장 존귀한 분을 모시고 있다. 그 존귀하신 분께서 네 노래를 듣고 싶어하시니, 너는 나와 같이 가야겠다.”

저 목소리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다고 했단다.

호이치는 이 소리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서 드디어 어디인지 도착을 했다. 두런두런대는 시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말투로 보아 궁궐의 말투 같았다. 이윽고 노래가 시작되니까 모든 사람들이 이 노래에 빨려 들어오는 것을 호이치는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헤이케가 멸망하는 대목에 이르자 여기저기 흐느끼는 사람, 통곡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호이치에게 들려왔다고 한다. 호이치는 이제까지 겪어 본 적이 없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호이치를 데려온 그 무서운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수고했다. 데려다 주마. 내일 밤에도 다시 와야겠다.”

"너는 여기 온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면 안된다.”

무서운 목소리는 다짐을 받았다. 이렇게 거의 매일 호이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밤에 다녀오니 드디어 이 절의 주지님이 호이치가 왜 저러는지를 물어도 호이치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지님은 그날 밤 몰래 호이치의 뒤를 밟았다. 호이치가 도착한 곳은 바로 바다에서 ‘용궁으로 간’ 어린 안토쿠 천황의 무덤 앞이었단다. 거기서 호이치가 노래를 시작하니 주변에 파란 도깨비 불이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산 사람과 죽은 혼령이 자주 만나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주지스님은 호이치의 온몸에 불경을 써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혼령이 호이치를 못 볼 테니 너는 말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주지스님의 당부였는데, 아뿔싸! 주지님이 그만 호이치의 귀에 불경을 쓰는 것을 잊었다고 한단다.

그날 밤, 그 무서운 목소리가 다시 나타났다.

“호이치! 호이치!”

“……”

무서움 목소리는 다시

“이 녀석이 숨었구나. 그런데 귀가 보이네?”

“네 놈이 안 가려고 숨어서 데려 갈 수는 없지만 내가 여기 왔었다는 증거를 존귀하신 분께 말씀을 아뢰어야 하니 네 귀를 잘라 가겠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호이치의 귀는 잃고 말았다는 것이 호이치의 전설이다.



(사진: 시모네현 마츠에에 있는 귀 없는 호이치의 상. 아카마신궁의 상보다 더 처연하다. 시모노세키에서 있었던 일이 왜 마츠에에 있을까? 고이즈미가 이 이야기를 널리 퍼뜨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 없는 호이치의 상은 시모노세키 아카마신궁 이외에 멀리 떨어진 시모네현의 마쓰에에도 있다. 어쩐 일일까? 바로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 Lafcadio Hearn)이라는 사람 때문이다. 이 사람은 아일랜드 출신 영국 군의관의 아들로 그리스에서 태어나 더블린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다가 일본 특파원으로 왔던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일본에 완전히 매료되어서 사무라이의 딸과 결혼하고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이었다. 그는 괴담(가이단)을 비롯해 수많은 일본의 문화, 이야기를 영어로 번역해서 서양에 알렸고 괴담에 ‘귀 없는 호이치 이야기’가 실리면서 서양에도 널리 퍼졌다.

(고베시의 수마사(須磨寺)에는 귀 없는 호이치 이야기를 연극으로 공연한다. 헤이케 무사의 유령이 칼을 들고 호이치의 귀를 베려 하고 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이 사람들이 참 기특하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옛 이야기, 문화를 보존하려는 노력이다. 호이치 이야기는 한낮 괴담일 수 있지만 지금도 고베시의 수마사(須磨寺)에는 귀 없는 호이치 이야기를 연극으로 공연한다. 그리고 영화로도 나온 적이 있다. 현대의 애니메이션에도 온 몸에 글씨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 장면이 종종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호이치 이야기의 패러디이다.

(자료사진: 1964년 일본영화 ‘괴담(怪談: Kwaidan)’ 속의 귀 없는 호이치. 아주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